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 92> 디어교하 기자단 - 교하에서 사는 재미를 알린다
수정 : 2020-01-20 03:49:28
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 92> 디어교하 기자단
교하에서 사는 재미를 알린다
기획에서 취재, 편집, 배포까지 주민이 만드는 마을 잡지
표지만 척 보아도 멋지다. 만져보니 질감이 편하고 부드럽다. 안을 펼치니 글과 사진들이 시원시원하다.
가독성이 높은 디자인과 나름 흥미로운 내용들이 깔끔하게 편집되어 있다. ‘디어 교하’ 계간지다.
편하게 이야기하자면 교하의 마을 잡지다. 디어는 영어의 Dear를 한글로 표기한 것으로 ‘소중한’ 뜻이다. ‘소중한 교하’ 잡지로 생각하면 된다.
이 잡지가 괜찮은 것은 창간 첫 해 외부의 지원을 받은 것을 빼고 자발적 참여와 후원으로 지난 3년간 빠짐없이 발간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거의 모든 언론매체가 광고 없이는 재정적인 문제로 발행되기 어려운 게 현실인 상황에서 말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답은 봉사와 후원 두 버팀목이 튼튼하다는 뜻일 터. 광고를 안 싣는 것은 순수한 마을 잡지에 상업적인 요소를 들이기 싫어서였다는데, 조금은 이해가 가진 않지만 그래서 더 결기가 느껴진다.
그러니 이 잡지의 탄생이 더욱 궁금해졌다. 잡지의 탄생에는 교하 지역 커뮤니티와, 교하도서관, 그리고 기자단이 크게 3축의 역할을 한 듯하다.
▲ 쩜오 책방을 둘러보고 있는 디어교하 기자단
지난 10년 동안 교하 지역의 커뮤니티 형성을 북돋은 교하도서관이 있었다. 이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을 찾아 프로그램과 행사를 열어 마을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했다. 지금도 교하도서관은 ‘디어 교하’가 나올 때마다 중요한 배포처이자 전시 공간 역할도 하고 있다. 교하도서관에서 일하던 이정은(이 마담)은 지속적인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를 꾀하기 위해 협동조합 형태로 교하에 ‘발전소책방5협동조합’을 만들고, ‘디어 교하’에 참여하며 기자단 모집과 인프라 구성에 마담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름이 너무 길어 그냥 ‘쩜오’(.5)로 개명한 책방에는 지역 주민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상호 정보교환과, 만남, 사교의 장이 펼쳐지고 있으니 문화가 척박한 파주의 오아시스나 다름없는 듯하다. 게다가 쩜오 책방은 ‘디어 교하’의 편집실과 기자실, 회의실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 마담과 책방 조합원들에게 땡큐다.
‘디어 교하’ 이전에, 2016년 경기문화재단의 지원 프로젝트로 김지하 사진 활동가가 사진을 찍고, 박채란 동화작가가 인터뷰를 진행한 인터뷰 사진집 <교하, 다가가다>가 나왔다. 교하로 떠나온 신도시 이민자들의 이야기였는데 교하 이주민 관계망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이어서 다음 해인 2017년 김지하와 박채란은 교하의 숨은 목소리와 시선을 찾고자 하는 취지로 인터뷰 워크숍과 사진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때 함께한 이들이 마을 잡지 ‘디어 교하’를 창간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곳곳에서 보석같이 숨어 있던 교하의 이웃들이 모이고 이들이 기자로 자원하면서 동력이 생겼다. ‘디어 교하’ 창간호는 2017년 8월 25일에 나왔다. A4보다 약간 큰 특이 판형으로 40페이지로 발간된 창간호의 잡지 이름 ‘디어 교하’ 글씨는 ‘커피발전소 in 교하’의 송성근 사장이 붓으로 멋지게 써주었고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 디어교하 편집회의
“대학 다닐 때부터 대학 잡지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교하로 이사 오고 나니 여기선 잡지가 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운을 뗀 디어 교하 편집장 서상일은 늘 머릿속에 “내가 있는 곳에 뭐 재미있는 모임이나 장소 같은 것은 없을까?”, “또 이것들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까?”를 떠올리며 사는 조용한 혁명가다.
기자단은 마을 잡지 발간에 관심을 가진 자발적 봉사자들인데, 편집장 서상일(쏘크라), 디자이너 여현미(다솜), 윤지원 방송작가(윤슬), 김지하 사진 활동가(시시), 이동일 사진가(이지작가), 비즈니스맨 이동구(동글이), 쩜오 책방지기인 이정은(이 마담)과 김동희(슈룹) 외에 김정현(깜돌), 허심(마음), 이소향(그레이스), 박인애(프리인애), 최수인(쑤쑤) 등이 ‘디어 교하’ 기자들이다.
모두 별명으로 통하게 한 것은 편함과 재미를 더한 발상이다.
▲ 디어교하 편집회의 중 사진을 고르고 있다.
‘디어 교하’의 내용들은 크게 나누어 지역민들의 일상과 문화 공간, 동네 모임, 이웃 주민 스토리, 지역 역사 발굴, 동네 담론 등이다. 그밖에 교하에 관한 것이면 어떤 것이든 일단 편집 회의 대상이 된다.
2주에 한 번씩 주로 동네책방 쩜오에 모여 편집 회의를 하고 기자 당 1개나 2개 정도의 기사를 써 취합해, 디자인하고 일산 소재 한영문화사에서 천부 정도 인쇄한다. 교하도서관, 교하동사무소, 교하우체국, 관내 기타 도서관, 파주출판단지와 교하 지역 업소 등에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편집회의, 취재, 편집, 디자인, 배포까지 모두 기자단들의 몫이다.
좀 힘들 수도 있겠지만 모두가 부담 없이 즐기며 일하는 체제가 구축된 듯하다.
▲ 디어교하 편집회의 분위기는 자유롭다. 그리고 즐겁다.
편집회의는 자유로운 분위기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는 ‘타가발전’(他家發電)이니 일단 무한 발전 가능성이 큰 집단이다. “조금 자신감 없이 제안한 취재건도 일단 꺼내면 힘과 격려를 보내 주는 경우가 많다”고 분위기를 전하는 윤슬(이하 별명으로 통일)은 중앙대 예술대 대학원서 영화를 전공하고 있는 방송작가다. 아무도 모르는 교하지역으로 이사와 동네 책방 쩜오에 우연히 들렸다가 기자단에 합류하게 됐다. “건강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고, 지역잡지의 기자가 되었으니 작은 꿈을 이룬 것 같다”며 떠올리는 미소가 편안하다.
자신을 사진가라 하지 않고 사진 활동가라고 소개한 시시는 어찌 보면 ‘디어 교하’가 발간되게 한 씨앗심기의 역할을 담당했던 주인공이다. ‘디어 교하’ 창간호는 2017년 경기문화재단 공모사업에서 ‘디어 교하 프로젝트(부제: 교하사람들, 묻고, 답하고, 찍다)’의 첫 번째 결과물로 나왔기에 2016년 경기문화재단에 처음 고리를 걸고 교하지역과 주민들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던 그의 생각이 발전해 교하의 마을잡지 ‘디어 교하’가 탄생된 것이라고 보아도 될 듯싶다.
사진 활동가란 명칭에선 단지 국한적인 의미에서 사진가로 불리우기 보단 사진 활동을 통해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싶은 그의 욕구가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 이후 전개된 잡지 행보는 다양한 분야의 기자들이 제 각기의 스코프를 가지고 심층 취재를 해나간 결과 공평하게 제 각기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온 결과로 잡지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편집회의도 자유롭게 취재거리나 방향 등을 말하면 서로의 반짝이는 의견들이 조율되어서 즉각적인 결론이 나버린다.
특별히 어떤 강조점이나 취재방향을 설정해 놓고 나가는 기존의 잡지와는 확연히 다른 자율형 편집회의다.
이 잡지를 멋진 잡지로 만들어 주는 데는 디자이너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다.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편안하고 깔끔한 디자인을 해준 여현미(다솜), 그리고 전체적인 편집을 총괄하고 있는 서상일(쏘크라) 편집장, 인프라 형성에 기름칠을 잘 해주는 이정은(이 마담)이 있어 일단 잡지를 끌고 가는 삼두마차가 든든하다.
지역주민 동글이(이동구)는 2006년 교하로 이사와 그간 서초동에 있는 그의 IT직장에 주구장창 출퇴근만 하다가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 1년 반 전 기자단에 합류했다. 그가 다뤘던 주제는 주워온 ‘길고양이 이야기’, ‘어린이 천문대 소개’ 같은 소소하고 알고 싶어 하는 일상의 이야기들이다. 앞으로 그는 생업으로 교하 마을 한 귀퉁이에 막걸리와 증류주를 수작업으로 생산하는 양조장을 만들 계획이다. 그는 확실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을 해나가면서 생의 즐거움과 보람을 찾고 있는 듯싶다.
머리스타일이 짱인 이지작가(38세)는 압구정동에서 지인들과 사진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데 바디빌더와 로케이션 사진촬영을 즐기는 오픈 스타일의 젊은 작가다. 잡지 도비라(속표지)에 계절성이 느껴지는 포토 에세이를 실으면서 처음으로 타 잡지 매체에 건축사진을 실어보겠다는 계획도 생겼고, 자료검색 차 교하도서관을 오가며 건축사진 작업에 3년째 공을 들이고 있다. “디어 교하는 내게 새롭게 건축사진 분야를 개척할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인연”이라고 말한 이지작가는 “ 평생에 마을이란 말을 여기에서 가장 많이 들어본 것 같다”, “마을이란 어감은 시골이나 고향이 주는 따듯함이 배어있는 것 같아 좋다”며 상기된 표정을 짓는다.
쩜오 책방지기 슈룹은 디어 교하 취재기자로 인터뷰나 배포를 할 때 겪었던 불편한 속내를 시원하게 드러낸다.
“인터뷰를 통해 내면적인 자기 이야기나 부침의 과정을 쓰려 해도 인터뷰 때 생략을 원하는 분도 적지 않아 온전한 인터뷰 진행이 어려울 때가 있어 안타깝다”고 속사정을 털어놓은 그는 “무료로 배포하려도 해도 일부 업소에서 배치를 하는 것조차 싫어해서 실망이 크다”고 내가 사는 지역의 일상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을 아쉬워하며, 빨리 ‘디어 교하’가 좀 더 지역민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고 사랑 받기를 희망했다.
▲ 디어교하의 이마담 이정은씨
여러 가지 잡지 형성과 발전 과정에서 마담 역할을 푸근하게 소화시켜온 책방지기 이마담은 잡지 살림꾼다운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지금은 자발적 참여와 후원만으론 잡지 발간을 끌고가기가 힘든 게 사실”이라고 밝힌 그는 “안정적인 재원이 확보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운정 신도시가 생긴 이후 많은 주민들이 교하에서 운정지구로 많이 빠져나간 사실을 아쉬워한 그는 파주시에서 종종 교하가 담론에서 빠져 있는 사실을 지적하며 그간 다루지 않았던 정치적 참여도 고민해 보아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금년 4월 총선 출마후보들이 교하지구 주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이젠 한번 들어 보아야 할 것”이라며 조심스레 운을 뗀다.
편집장 쏘크라는 디어 교하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재미있게 마을을 활성화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디어 교하 같은 잡지들이 파주 곳곳으로 확장되면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이 더 좋아지지 않겠냐”며 희망을 이야기 한다. ‘디어 교하’는 문산 마을잡지인 ‘우리 동네 문산’을 인큐베이팅시켜 마을잡지를 각 지역구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런 작업을 확산 시켜보고 싶은 것이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집에 놀러가 본 적도 없는 집이 더 많은 현재의 마을과 동네들! 이런 삭막한 동네에서 사람 사는 맛을 느끼며 살기 위해 의식 있는 사람들이 모여 돈 안 되는 자발적 봉사를 통해 만들어 내는 ‘디어 교하’! 그래서 귀하고 의미 있는 마을 잡지다. 이 잡지의 발간을 축하하고 말없이 후원을 아끼지 않는 후원자들과 함께 ‘디어 교하’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해 본다.
김석종 기자
디어 교하 후원계좌 :102400-02-099654(우체국 예금주: 마을발전소)
취재문의: 쩜오책방 031 942 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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